카테고리
이전블로그
이글루링크
[이불을 걷자] 구구한..
SabBatH zoops 이야기 ▒ 제닉스의 사고뭉치 ▒ [미르기닷컴] 外傳 나의 수수한벗 이야기 Rodrigo Santoro WALLFLOWER DarkForce Pepe 글쓰기는 삶을 정리하는.. starla's trash can 혹.. ozzyz review 허지웅.. 읽Go 듣Go 달린다 靑狼派 알스터에서 부는 바람 무료 성인 사이트 Punctum! Punctum! C1+y=:[8]: 제목없음 《몽환비밀실험실》 旅行 - 주말이야기 문제청년의 캠퍼스 조교.. 이규영 블로그 아빠늑대의 음흉한 둥지 초보PD 마사루의 블로그 오래된 새길 OranzBlue 최근 등록된 덧글
Great work!
by Gabriel at 11/18 Thank you! by Raymond at 11/18 Nice site! by Debbie at 11/18 Great work! by Greg at 11/18 Well done! by Jody at 11/18 Great work! http://ueb.. by Naomi at 11/14 Well done! <a href="h.. by Vincent at 11/14 Great work! [url=http:.. by Sally at 11/14 Good design! <a hr.. by Carl at 10/01 Thank you! [url=htt.. by Don at 10/01 |
<밀양>은 정말 60회 칸영화제의 강력한 그랑프리 후보인가? 국내 많은 언론들이 <밀양>에 대한 해외 반응이 호평 일색인 것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정작 프랑스 칸 현지 분위기가 그리 전폭적인 것은 아니다. 차라리 논쟁작에 더 가깝다. 물론 많은 외신들이 <밀양>을 주목할 만한 영화로 꼽고 있고, 배우들의 연기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건 사실이다(특히 전도연에 대한 극찬은 전 매체 공히 동일하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가 참석하는 공식 상영 ‘갈라 스크리닝’에서 기립박수가 나오는 건 기본적인 예의에 속하는 일이며, ‘스크린인터내셔널’의 칸데일리에 4점 만점 평점이 나왔다는 건 ‘포지티브’의 미셸 시망 혼자 부여한 점수다. 다른 매체의 점수가 모두 합산된 평점을 기대했으나, 오늘(25)자 스크린 데일리는 발행되지 않았다. ‘버라이어티’ 칸데일리판에서 평론가 데렉 엘리는 “영화적이라기보다 문학에 더 가까운 작품”이라고 운을 뗀 뒤, “<밀양>은 전도연의 확신에 찬 연기 때문이라도 분명 볼만한 영화다, 하지만 (문학이 아닌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잘 직조된 긴장감이나 드라마를 낳지는 못한다”라며 아쉽다는 평가를 내렸다. ‘스크린인터내셔널’처럼 각 매체가 제공한 작품별 평점을 종합해 공개하는 ‘Le Film Francais'의 칸데일리에서, <밀양>은 점수를 제공한 13개 매체 가운데 2개 매체(Observateur의 메리쥬와 L'EXPRESS의 에릭 리비오뜨)로부터만 4점 만점의 평가를 얻었다. 2점을 제공한 매체는 6개, 3점을 제공한 매체는 5개였으며, 1점이나 0점을 부여한 매체는 한 곳도 없었다. 또 다른 화제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4개 매체가 만점을, <4개월, 3주 그리고 이틀> <잠수종과 나비> <알렉산드라>는 3개 매체가 만점을 부여한 바 있다. 물론 호의적인 반응도 많다. 전에 <밀양>을 '칸에서 꼭 봐야할 영화‘가운데 하나로 꼽았던 '인디와이어'의 안소니 카우프먼은 그랑프리를 받을만한 새로운 선두주자로 <밀양>을 꼽으면서 ”쓸데없는 자만에 찬 다른 경쟁작들과 달리, <밀양>은 날카롭고 감수성 넘치며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영화는 현실감 넘치는 화법으로 인간의 진심을 표현한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할리우드 리포터’도 칭찬 행렬에 동참했다. 할리우드리포터의 커크 허니컷은 전도연의 연기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으며 “영화의 마지막은 결코 확신할 수 없는, 그럼에도 계속돼야 하는 인생의 현실을 잘 담고 있다. 이것은 곱씹어볼만한 성취다”라고 설명했다.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던 언론시사회 이후 만난 외신과 평론가들 가운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은 대부분 유아살해와 신성모독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 개신교 문화에 대한 생소함이 “기독교를 부러 왜곡하고 있다”라는 잘못된 해석을 낳은 것으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유럽의 기자들은 신도들이 울부짖으며 기도 한다거나, 아이가 죽는 장면에서 불편한 기색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요컨대 <밀양>에 대한 칸의 반응은 모두가 두 손 두 발 들고 걸작이라고 추켜 세운다기보다, 평작과 수작이라는 평가가 조금씩 엇갈리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하다. 다만 전도연에 대한 외신의 반응은 주목해볼 만하다. 이렇게 여배우 한 명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경우는 <4개월, 3주 그리고 이틀>을 제외하면 전무한 상황이다. 여우주연상을 받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조건 극찬을 받았다며 남들이 부여한 점수에 일일히 주목하는 것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정제된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닐까. 이창동 감독은 <밀양>공식 상영 이후 기자회견에서 "수상 여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너무나 간명한 진실 하나를 복기하건데,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다. [필름2.0 허지웅]
문맹은 공동체문화의 한 가지 조건
"1921년, 문맹이었던 케냐 민족주의자들은 가비의 신문 [니그로 세상]의 독자 주위에 모여 기사를 두번 세번 듣곤 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숲을 가로 질러 여러 방향으로 달려가 자신들을 사로잡고 있던 노예 의식에서 벗어나게 해 줄 정치적 주장들에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그들이 암기한 내용 전체를 신중하게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C. L. R 제임스 독본] (1992) /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385쪽에 재인용 (번역 수정) 메이지 시대 중반까지 소설은, 신문소설도 그랬지만, 한 사람이 소리내어 읽고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소설은 묵독에 적합한 것입니다. 근대소설을 읽으면 내면적이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남에게 등을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내면적인 소설을 소리내어 읽기는 어렵습니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말" 문학동네441쪽
몸으로 하는 공부 -조르바
글쓰기를 두고 내공이니 진검승부니 따위의 무협지 말들로 짐짓 비장한 체 하는 이들이 있다. '말'은 그저 '말'일 뿐, 나의 눈물과 너의 웃음, 너의 피와 나의 땀에 맞닿아 있지 않다. 언어가 현실을 담아내고 혹은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결코 언어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언어는 그 자체로 몸을 가진, 따라서 눈물과 웃음과 피와 땀을 가진 현실존재다. 그러니 언어의 눈물에 젖어보지 못한 자가 글쓰기 내공을 말하고 말의 피범벅에 질척거려 보지 못한 이가 글쓰기 진검승부를 떠들어 대는 건, 우습지도 않다. 말은 누구나 할 줄 알지만 제대로 말하는 이는 드물다. 글은 누구나가 쓸 수 있으나 '읽히는' 글을 쓰는 이는 더더욱 귀하다. 언어를, 활자화된 문자와 말된 말, 즉 의미 되어진 소리라 생각 않고, 사람 '사이'에서 인간-세계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사건으로 여긴다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사태는 오늘날 그저 '5.18'로 축약되어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5.18'이란 말을 한다/쓴다는 것은 그 시간 그 곳에서 피 흘리고 눈물 쏟았던 뭇 인간들과 그 사건과 상황을 우리-나와 너-의 존재 속에 각인시킨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반복과 습관은 인간성의 가장 위험한, '보이지 않는 적'이다. '무심코' '반복해서' 쓰다 보니 정작 그 '사건'과 '사람'은 사라지고 말만 남은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말들이 마치 유전자 변형 감자마냥 마구 쏟아져 나오는 세계는 처리할 길 없는 '言시체'들로 뒤덮여 있는 지도 모른다. 공부 또한 그렇다. 글된 말과 무수한 기호들로 이루어진 '책'을 통해 공부라는 행위는 이루어진다.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공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무심코 말하듯, 무심코 공부하는 행위는 무가치하다. 아니, 惡하다. 내 공부가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너'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고, 그를 어떤 상황에 처하게 만들지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공부는 결국 공부라는 이름에 합당치 못하다. 그러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공부'다. 아니, 그저 머리를 굴리는 '짓'이다. '너'야 어찌되건 말건 내 공부를 통해서 내 배부르고 등 따숩게만 된다면야 하고 생각한다면 그리 해도 된다. 다만 기억하라. 너와 '같은' 공부를 한 누군가를 통해 네 배가 터지고 네 등이 꺾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하는 공부'는 '몸으로 하는 반성'이다. 피떡이 되도록 맞아보거나 눈 앞이 흐릿해질 때까지 벌을 당해 본 이는 몸으로 하는 반성이 얼마나 절실한 지 알 거다. 말 안 들으면 개패듯 패야한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하는 짓이, 내 삶이 그러했을 수도 있었을 무수한 '너'들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알아야 한단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렴 어때 난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이에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걸 상기시켜야 겠다. 이 책 <<몸으로 하는 공부>>는 '몸으로 하는 반성'의 첫걸음을 떼는 데 도움이 된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2005)
책소개 눈부신 의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연장되고, 보다 더 쾌적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위를 가리기 힘든 넘쳐나는 의학정보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건강 염려증이 도를 넘어서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덕분에 일부 의료진과 제약회사는 ‘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될 병’에 대해, 예방과 관심의 차원이 아닌 엄포와 협박으로 검사 , 투약 , 시술을 권유하기도 한다. 물론 의약 분업과 한방 ,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과 산부인과 ․ 소아과 등 특정 진료과목의 환자 감소 등의 이유로, 이전보다 병원의 문턱이 낮아지고 의사들이 친절해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병원은 여전히 두려운 곳이며, 의학은 어렵고 낯선 ‘그들만의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이 책의 저자인 서민 박사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곳이긴 하나, 때때로 필요악이 되기도 하는 의학과 병원의 실태를 제대로 이 책 속에서 짚어주고자 했다. 물론 그는 의사면허번호 46663호로 현재 단국대학교 기생충학과 교수로 있는 의사이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의료 정보를 알려줌과 동시에, 의료계의 실상을 솔직, 담백하게 파헤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의료 정보와 의료계의 실상을 낱낱이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다양한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의 일관된 주제는 건강한 삶,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의학, 기초 의학 분야의 하나인 기생충에 관한 연구로 모아진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역시 그런 그의 글쓰기 주제대로, 올바른 건강 상식과 의료계 정보, 그리고 음지에 숨겨놓은 갖가지 병에 대한 정보로 꽉 차 있다. 일단 독자의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것은, 저자인 서민 박사의 방대한 독서량이다. 그는 그동안 섭렵한 다양한 책으로부터 얻은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어, 독자가 전혀 지루하지 않으면서 고급 의료정보를 쏙쏙 얻을 수 있도록 길잡이 노릇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 전작 소설 "대통령과 기생충" 으로 알라디너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큰 인기를 얻은 저자 서민의 건강의학교양서. 저자 특유의 해박한 지식과 재미를 겸비한 흡입력 높은 책. * 참고로 본인은 전작인 이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음. 말 그대로 관심가는 책 페이퍼니까.. | ||||||